[책마을] "대통령님, 제가 탓하는 사람은 예산국장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입력 2023-12-01 18:42   수정 2023-12-02 01:04

“밀턴 프리드먼은 언제 죽었나. 또 언제부터 왕이 되었나.”

2019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조 바이든 후보가 던진 질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우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이름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 바이든은 시장을 중시하는 ‘프리드먼 시대’의 종언을 선언하기 위해 이같이 발언했지만, 역설적으로 10년도 전에 세상을 떠난 프리드먼이 아직 미국 경제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한 미국 경제학자다. 케인스와 함께 20세기 경제학을 이끈 석학으로 꼽힌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아내인 로즈 프리드먼과 함께 시장의 우월성과 정부 실패를 설명한 TV 시리즈 ‘선택할 자유’로 평범한 시민들이 시장경제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밀턴 프리드먼: 마지막 보수주의자>는 스탠퍼드대 역사학자 제니퍼 번스가 쓴 그의 전기(傳記)다. 저자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 보관된 프리드먼의 논문을 전부 열람하고 그의 친구와 동료, 경쟁자들을 인터뷰했다. 책은 프리드먼의 개인적 일생부터 경제이론과 통화정책 등 복잡한 주제까지 두루 섭렵했다.

프리드먼은 통화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에 맡기자는 ‘작은 정부’ 이론으로 케인스 학파의 적극재정을 비판했다. <미국의 화폐사>(1963)에서 1929년 대공황이 “미국 중앙은행(Fed)이 시중에 돈이 말라버리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소비자 수요 감소와 부족한 정부 개입 탓”으로 본 케인스주의자들의 견해와 상반되는 입장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저자는 프리드먼의 주장이 옳았다고 평가한다. 1차 오일쇼크로 인해 경기는 후퇴하는데 물가가 치솟는 상황. 아서 번스 당시 미 중앙은행 의장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금리를 인하했다. 임금과 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심산이었다.

번스의 절친한 동료였던 프리드먼은 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슬프고 실망스러우며 우울하다. 무엇보다 통렬한 배신감을 느낀다.” 두 학자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프리드먼의 예상대로 미봉책에 불과한 정부 개입은 시장의 교란을 키울 뿐이었다. 이듬해 물가가 다시 폭등했다.

프리드먼은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 재임 기간(1969~1974) 내내 경제정책을 맹렬히 비판했다. 닉슨 대통령은 그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조지 슐츠 당시 행정관리예산국장을 통해 프리드먼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조지 슐츠를 탓하지 말아 달라는 대통령의 부탁에 프리드먼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대통령님, 저는 슐츠를 탓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탓하죠.”

‘신자유주의의 기수’ ‘통화정책의 아버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인물이지만, 책은 그를 ‘마지막 보수주의자’라고 명명한다.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결집한 자유시장경제, 개인의 자유, 글로벌 협력 등 보수주의 이념이 그의 사후 와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 우파는 여러 분열로 인해 프리드먼의 이론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리=안시욱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바튼 스와임의 서평(2023년 11월 28일) ‘Milton Friedman Review: America’s Anti-Economist‘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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